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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작귀 사회학by 시노기

사회를 비교하기

치이카와의 세계는 사회주의 같을까?

지금까지의 장면만으로 치이카와의 마을을 사회주의라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치이카와는 일의 표를 직접 가져가지만, 보수 규칙을 만든 사람은 보이지 않습니다. 갑옷 씨 중에는 직접 만든 물건의 값을 매겨 파는 사람도 있습니다.

일의 표와 보수 창구, 치이카와가 집에 당첨된 일, 갑옷 씨의 잠옷, 로우의 장면을 다룹니다.

이 페이지는 일본어 원문을 번역한 것입니다. 인용한 만화의 내용은 일본어 원작을 기준으로 합니다. 일본어 원문 읽기 ↗

사회주의라고 부르려면 무엇을 봐야 할까?

사회주의인지 생각하려면 일하는 장소와 도구를 누가 소유하고, 사용 방법을 누가 정하는지 봐야 합니다. 창구에서 보수를 준다는 사실만으로는 답을 알 수 없습니다. 치이카와가 제초 일의 표를 가져가는 장면에도 땅과 도구의 주인은 나오지 않습니다.

일의 표는 선착순

갑옷 씨가 창구에서 종을 울리자 사람들이 모입니다. 먼저 온 사람이 가져가라는 말이 들리는 가운데, 치이카와는 제초 일의 표를 직접 집습니다.

치이카와는 표를 직접 가져갑니다. 하지만 선착순이라서 고를 수 있는 표는 다른 사람이 언제 왔는지에 따라 달라집니다. 치이카와의 희망만으로 일이 정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창구가 정하는 것

제초나 토벌이 끝난 뒤 보수는 주머니에 담겨 창구에서 전달됩니다. 어느 날 위험한 풀이 섞여 있었다는 것을 알자, 창구의 갑옷 씨는 이번에는 보수를 올리겠다고 말합니다.

헌책방의 상자에는 자격을 따면 보수가 오른다는 안내가 있습니다. 제초 자격증과 토벌에 관한 책도 나란히 놓여 있습니다.

위험한 풀이 섞인 일에 대해 창구의 갑옷 씨가 보수를 올리겠다고 알립니다. 자격이 있어도 보수가 조금 오릅니다. 그러나 창구에 있는 사람이 금액을 정했는지, 정해진 규칙을 전했을 뿐인지는 나오지 않습니다. 보수를 건네는 사람과 규칙을 만드는 사람은 나누어 봐야 합니다.

위험한 풀에는 얼마를 매길까?

갑옷 씨가 보수를 올린 일에는 위험한 풀이 섞여 있었습니다. 원래는 없어야 하는 풀이며, 그대로 두었다면 주변이 피해를 입었을 거라고 설명합니다.

보수를 올린 결정은 일한 사람을 위로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한편 왜 위험한 풀이 섞였는지, 다음에 같은 곳에서 일할 사람에게 어떻게 알릴지는 이 장면에 나오지 않습니다. 위험을 겪은 뒤 돈을 더 주는 것과 위험을 줄이는 방법은 따로 생각해야 합니다.

치이카와의 집은 배정받은 집일까?

하치와레가 집을 살 돈을 모았느냐고 묻자, 치이카와는 요구르트 경품에 당첨됐다는 통지를 보여 줍니다. 열쇠를 쥔 모습도 그려집니다.

큰 집에 산다는 이유로 치이카와가 높은 보수를 받는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모두에게 집을 똑같이 나눠 주는 제도가 있다고도 할 수 없습니다. 치이카와가 이 집을 얻은 길은 일의 창구와 다릅니다.

갑옷 씨는 자기 물건도 판다

갑옷 씨는 직접 만든 잠옷을 진열하고 값을 붙여 팝니다. 다 팔리자 기쁜 표정으로 팻말을 들고 돌아갑니다. 동네에는 머리 감겨 주는 가게도 있고, 시사는 로우에서 일합니다.

갑옷 씨 중에는 일의 보수를 건네는 사람과 직접 만든 물건에 값을 매겨 파는 사람이 있습니다. 창구에서 주머니를 건네는 일과 물건의 가격을 정하는 일은 다릅니다. 창구 장면만으로 이 마을의 모든 거래를 설명할 수 없습니다.

몫을 친구가 정할 때도 있다

토벌을 마친 뒤 랏코가 하치와레에게 보수 주머니를 건넵니다. 하치와레는 처음에는 사양하지만, 랏코는 토벌한 사람은 하치와레라며 받으라고 권합니다.

창구에서는 일의 보수로 주머니를 건넵니다. 랏코도 주머니를 주지만, 하치와레가 토벌했으니 받으라고 말합니다. 같은 주머니처럼 보여도 누가 누구에게 왜 주는지는 다릅니다.

감시 사회라고 부를 수 있을까?

일을 접수하고 보수를 주는 창구가 있으면 누군가가 생활을 전부 지켜보는 듯한 느낌이 들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확인한 장면에는 주민을 감시하는 장치나 따르지 않는 사람을 벌하는 일이 나오지 않습니다. 창구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감시 사회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조금 불안한 것은 보수 규칙을 만드는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치이카와가 표를 고르고 풀을 뽑고 주머니를 받는 과정은 보이지만, 안에 든 금액을 어떻게 정하는지는 보이지 않습니다.

이 동네의 자유와 규칙

일을 시작할 때 치이카와는 표를 집습니다. 보수 창구에서는 갑옷 씨가 인상을 알립니다. 가게에서는 다른 갑옷 씨가 물건의 값을 정합니다. 치이카와는 경품 추첨으로 집을 얻었습니다. 같은 마을에서도 무엇을 어떻게 고르는지, 어떻게 정해지는지는 장면마다 다릅니다.

치이카와는 일의 표를 고를 수 있지만, 보수 규칙을 바꿀 수 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갑옷 씨는 직접 만든 물건의 값을 정합니다. 일을 고르는 것과 자기 물건의 값을 정하는 것은 다른 선택입니다. 어떤 선택을 할 수 있는지는 사람과 일에 따라 달라집니다.

그래서 사회주의일까?

일의 표를 가져가는 사람, 보수를 건네는 사람, 물건에 값을 매기는 사람은 각각 다른 일을 합니다. 치이카와는 스스로 표를 고르고, 갑옷 씨는 자기 물건에 값을 매깁니다.

땅과 도구의 주인도, 보수 규칙을 만든 사람도 아직 알 수 없습니다. 주민을 감시하거나 벌하는 제도도 이 장면들에서는 확인되지 않습니다. 따라서 이 마을을 사회주의나 감시 사회라고 단정할 수 없습니다. 치이카와의 표, 갑옷 씨의 가격표, 랏코의 주머니에는 각각 다른 결정 방식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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